열불나게 하는 관청 in 독일
한국에서 살 때는 한국이 좋은지 몰랐다가 해외에 나와서 직접 부딪혀서 살다 보면, 한국이 정말 이런 건 잘되어 있구나 하는 점을 경험으로 알게 되는 것 중에 첫 손꼽히는 것이 관청에서의 공무원 태도입니다.
이번에는 독일에 첫발을 내 디딘 한국가족이, 며칠 안에 가장 처음 경험하게 되는 관공서의 불친절에 대해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독일에 처음 이민을 결심하고 오시게 되면, 외국인으로서 주로 가게 되는 관공서는 두 군데입니다.
첫째, 우선 동사무소 같은 곳이 있어요. 거기 가서 거주자 신고를 하게 되죠.
둘째. 외국인이기 때문에 외국인 관청에도 정기적으로 가야 되는 일이 생기는데, 주로 비자받으러 다니죠.
한국에서 오신지 얼마 안되신 따끈따끈한 분들은 상당히 당혹스럽거나 혹은 열 받는 일을 체험하게 됩니다.
별 무리 없이 끝났다면 그건 대단한 행운이시거나, 혹은 미리 정보를 알고 가셔서 기대 수준이 낮았기 때문일 겁니다.
1. 손님(우리, 그들에게 외국인)은 관공서에 가서는 절대 왕이 아니다. 오히려, 갑을 상대하러 가는 ‘을’ 같은 기분이다. 실제로 그렇다.
2. 동사무소에는 예약 없이 그냥 가면 된다. 주변 지인의 도움을 받아, 우선 전입신고 같은 거 하면 된다. 단, 외국인이 별로 없는 작은 동네 가면, 동사무소 직원에 따라서 황당한 요청을 받을 수 있다. 저의 경우, 동사무소 담당자가 영 엉터리여서, 회사 동료에게 전화해서 동료가 외국인 관청의 누구누구 담당을 알려줬고, 동사무소 직원이 그 외국인 관청에 전화까지 해서 전입신고를 받아준 적이 있다. 서류를 다 들고 갔는데도 말이다. 북한과 남한도 구분 못한다.
3. 외국인 관청의 경우, 미리 이메일 등을 통해서 방문 요청을 하고, 날짜/시간을 이메일로 받고, 그 시간에 정확히 맞춰서 담당자 문을 두드려야 된다. 날짜/시간은 상당히 늦게 준다. 보통 1~2주는 정말 좋은 스케줄이고, 보통 4주 뒤 어떤 특정한 시간에 오라고 한다. 그럼, 회사에 조퇴 내고 가야 된다. 독일어가 안되면 꼭 누구를 통역으로 데려가야 된다.
외국인 관청을 예로 들어보자.
대부분의 관청이 이런 시스템이니까.
일단 주차를 하고 건물을 잘 찾아 들어간다.
여기서부터 벌써 좌충우돌일 수 있다.
왜냐하면, 독일의 안내판은 친절하지 않아서, 이게 어떤 건물인지 표시가 잘 되어 있는 경우가 드물다.
모르면 모조건 계속 물으면서 잘 찾아간다.
건물 찾으면, 그 건물 안 입구 바로 옆에 있는 리셉션 같은데 물어서 외국인부서(Auslanderamt)를 찾아야 된다.
잘 찾았으면, 또 그 부서 입구까지 가서 잠시 헤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관공서같이 뭐 어떤 표시가 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잘 아는 지인이나, 회사 직원하고 함께 가야 된다.
모르는 사람끼리 가면 힘들다.
여하튼, 그 부서 입구에 가면, 만나기로 한 사람이 당신 눈에 바로 보이지 않는다.
각 직원들은 보통 방 1개에 1명씩 들어가 있다.
그래서, 원래 미팅 약속한 이메일에 적혀있는 방 호수 및 사람 이름을 정확히 숙지하거나, 이메일을 잘 프린트해서 가야 된다. 그 직원의 방을 확인하고는 밖 대기실에서 앉아서 기다린다.
그리고, 정확히 그 시간이 되면, 문을 조용히 두드린 후, 2~3초 후에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인사를 하고 들어가도 되냐고 묻는다.
보통 들어가 앉는다,
혹은 밖에서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면 밖에 앉아서 기다리면, 좀 지나서 그 직원이 들어오라고 한다.
그럼, 이제 대화를 시작한다.
보통은 비자 때문에 이런 관청에 가는 것이다.
그 직원은 당신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서류를 보고, 여권을 보고 뭐라 뭐라 할 것이다.
다 마치고 나온다.
나오면서 기분이 참 별로일 거다.
운이 나쁘면, 경찰서에서 취조당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담당자가 3번 바뀌었는데, 두 번째 남자 직원의 차가운 눈빛, 말없는 응대를 겪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 한 10년 지나서 드는 생각은 초기에 내가 느꼈던 생각과 많이 다르다.
그 이유는 그들의 노동에 대한 개념이 우리 한국인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래를 보시라!
1. 독일은 공무원이라 할지라도 똑같은 노동자로 보기 때문에 노동자의 근무환경을 대단히 중요시 여긴다.
2. 관공서의 시스템이 손님(방문자)에 맞춰져 있지 않고, 근무하는 노동자에 맞춰져 있다
3. 근무자는 일이 아무리 쌓여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정도의 일만 한다. 커피 마실 거 다 미시고, 화장실 가고, 담소 나누고, 휴가 가고, 연차 쓴다. 가령, 본인 책상에 100건의 비자서류가 쌓여 있고, 하루에 5건 처리할 수 있으면, 오늘 신청한 사람은 근무일 기준 20일 뒤에 비자서류를 진행한다. 즉, 4주다. 그런데, 만약 200건이 쌓여 있다면? 그냥 똑 같은 스피드로 일한다. 누가 뭐라 하는 사람 없다. 신청자만 괴롭다. 항의할 데가 사실 없다.
4. 담당자가 휴가면, 그 직원이 하던 일은 스톱이다. 다른 직원들이 그 직원의 업무를 대신해주지 않는다. 무슨 일이 지체되고 있는지 모른다.
5. 만약 당신이 정말 급한데, 담당 직원은 일이 더디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보통은 방법이 없다. 순전히 운에 달렸다. 당신의 비자를 신청받은 담당자가 친절하거나, 당신이 전입 신고한 시의 업무 분위기가 어떠한지에 따라서 당신에게 약간의 행운, 혹은 불운이 온다. 외국인을 무시하는 듯한 담당자를 만나거나, 한국을 잘 모르는 무식(?)한 담당자를 만나서 불이익 보는 경우도 더러 있다. 진짜로 복불복이다.
6. 독일의 외국인 관청에 비자 신청하러 가는 한국인은 보통 교육 수준이 좀 높고, 경제적으로도 궁핍하지 않고 한 그런저런 계층일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런 관청에 오는 외국인은 보통 중동 이민자이거나, 터키계 이민자의 친인척이거나, 동유럽계 유럽인이 대부분이고, 중국인, 동남아인이 좀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가령 한국에 있는 외국인 관청에서 한국인이 일을 하고 있으면, 보통 동남아, 중국 조선족들이 비자 때문에 방문할 것이다. 친절하게 할까? 어떻게 대할까? 제가 듣기로 쌍욕이 수시로 들린다고 한다. 지금은 모르겠다. 여하튼, 독일의 보통 공무원들은 큰 느낌 없이 방문자를 대하지만, 일부는 비자 신청하는 외국인을 까다롭게 대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한국인으로서 가끔 열 받는 경험을 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 무식한 독일인들(여기 관청에서 일하는 애들이 교육수준이 높지 않다. 외국에 대해서 잘 모른다)이라 이해해야 한다. 안 그러면, 우리만 열 받는다.
1년에 한 번씩 한국 갈 때 들르게 되는 은행, 관공서에서 업무를 보다 보면, 이제는 그들의 과잉친절을 상당히 불편하다. 손님을 그렇게 대해야 하는 그들의 업무 스트레스가 상당할 거라고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관공서를 떠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의 고객 응대 수준을 보면, 독일과 한국은 너무 한쪽 끝에 있다.
우리는 과잉 친절하여 직원들이 힘들고, 독일은 과소 친절하여 방문자들이 짜증이 올라온다.
서로, 반대방향으로 조금씩 변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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