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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수필

수학 수재의 회상

by 댄초이 2021. 3. 20.

들어가는 글

어릴 때부터 수학을 잘하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태어나자마자 1살을 먹는 특별한 방식으로 나이를 세는 대한민국 기준, 그는 올해 반백살이 되었습니다. 

 

누구 이야기냐고 물으신다면, 바로 이 글을 쓰는, 한 중년의 독일 교민이자 올댓독일 주인장입니다.  

저는 91학번입니다. 72년생이죠. 수능 첫 세대가 75년생, 94학번부터니까, 저는 학력고사 거의 끝 세대입니다. 

 

제 학창 시절, 다른 친구들과 구별되는 유일무이한 능력은 수리력에 있었습니다.

 

독일에서 꽤 오래 산 어느 날, 갑자기 여러 단상들이 아침 새벽에 떠올라 이 긴 글을 적어 보기로 맘먹었습니다. 대부분 제 자랑질이며, 약간의 어린 시절 고백이기도 합니다. 혹여 여러분 자녀 교육에 쓸모 있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두 가난한 어린 시절

저희 부모님은 이제 70대 중반, 80을 바라보시는 노인분들이십니다. 제가 어릴 때, 그분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 바쁘셨고, 저와 제 남동생의 숙제를 봐준다던지 하는 그런 사치를 부릴 시간이 없으셨습니다. 일 마치고 집에 오시면, 얼른 저녁식사 준비하고 치우고, 방 청소하고 씻고, 저녁 9시, 10시만 되면 피곤에 절어 주무시기 바쁘셨습니다. 저희는 남들도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습니다. 경상도 한 공업도시의 저개발 변두리에 사는 소시민의 삶은 그랬습니다. 다들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던 때가 그 시절이었고, 우리는 크게 비교당하면서 살지는 않았던 거 같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보니, 유치원 다니다 온 친구들이 제 기억으로 60명 남짓한 한 반에 15명 정도는 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정도 비율의 아이들이 보이스카웃도 하고 걸스카웃도 하고 태권도장도 다니고 하던데, 저는 뭐 하나 해본 적도 없고, 해달라고 부모님 졸라 본 적도 없고, 그냥 동네 애들하고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밖에서 싸돌아다니던 기억밖에 없는 정말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평범했지만 집안은 가난한 편이었고, 가난한 집안 형편이 반 친구들에게 알려지는 게 부끄러운 그런 감정을 항상 품고 살았던 거 같습니다. 그렇다고 찢어지게 가난한 그런 거는 아니었습니다. 많이 아끼면서 사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부지런하셔서 나중에 중학교 1학년이 될 때에는 셋방살이 청산하고 우리 집을 갖게 되었고, 지금도 부모님은 그 집에 살고 계십니다. 


숫자, 너무 쉽잖아!

제가 나이 들어 제 어린 시절을 문득 회상할 때, 부모님께, 특히 아버지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전에 올린 '자녀의 책 읽는 습관 들이기'에 썼었고, 다른 하나는 숫자에 관한 간단한 교육이었습니다.  

 

자녀의 책 읽는 습관 들이기

 

 

학교 다니면서 수학 때문에 스트레스받으신 분 많으시죠? 저는 고1 겨울방학 때부터 스트레스를 좀 받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 항상 수학만은 1등이어서 자신이 있었습니다.

 

저는 재수없게도 학창 시절에 고1 때까지는 수학 공부를 거의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시험 치기 전날, 시험 범위 내 교과서를 눈으로 잠깐 한 번 보고 시험 치면, 100점이거나, 너무 빨리 풀다가 실수로 1개 틀리곤 했습니다. 그렇다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학생도 아니었습니다. 40~50분을 어떻게 집중해서 선생님 말씀을 듣나요? 눈이 칠판을 향해 있든 창밖을 바라보든 머릿속은 자주 멍한 공상이나 다른 생각이 머물렀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지 않았었나요? 초등학교 때는 산수 시간에 뭘 배우고 있는지도 모를 때도 꽤 있었습니다. 멍 때리다 선생님이 시킬 태세를 보이면, 후다닥 산수책을 들여다보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제 자랑 겸 어릴 적 저의 뛰어난 수학 감각을 체험해드릴 에피소드 6가지를 적어보겠습니다.

아니꼬우시면, 건너뛰시면 됩니다.


수학 수재의 에피소드 6가지

 

1. 5살 어린이

저는 기억을 못 하는데, 제가 한국나이로 5살이었을 때 아버지가 우리 집에 천재 났다고 생각한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천 원짜리 지폐 1장을 어린 저에게 주시면서, 동네 구멍가게 가서 과자 두세 가지를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셨다고 합니다. 당시 천 원이면, 지금 만원보다 큰돈입니다. 그때 모든 과자 한 봉지가 10원~50원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심부름시키면서 제게 "거스름돈 얼마 받아야 되는지 계산해서 네가 주인아주머니한테 거스름돈 얼마 주세요 라고 말해"라고 시켰습니다. 제게 항상 이렇게 시키셨던 거 같습니다. 나중에 그 구멍가게 주인이 제 아버지에게 알려드렸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제가 숫자 계산을 잘 한다는 것을 아시고 계셨고, 동네 사람들한테 자랑하고 싶으셨던 거 같습니다. 

 

 

 

2. 7살 구구단 떼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저는 구구단을 말할 줄 알았습니다. 외웠다고 하기보다는 말할 줄 알았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제가 어린 시절은 지금 아이들 교육환경과는 천지차이여서, 아이들이 한글 가나다라 정도 쓰고, 숫자 1, 2, 3, 4 정도 쓸 줄 알고 학교에 들어가는 정도가 보통이었습니다. 물론 그 시절에도 서울은 좀 달랐겠다 싶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어느 날, 아버지가 단칸셋방 한쪽 모퉁이에 구구단 중에 2단을 붙여 놓으시고는 아침에 집을 나서시면서 제게 명령하셨습니다. "오늘 꼭 다 외워! 이따 저녁 먹고 검사한다! 못하면 회초리다!"

 

저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하루 종일 들판과 논과 산을 뛰어다니다, 주위가 어두컴컴해질 때 비로소 아버지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전속력을 다해 집으로 뛰어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곧 돌아오실 아버지를 생각하며 얼른 벽에 붙은 2단을 눈으로 봤습니다. 제 지금 기억에 외울 필요 없이 규칙적으로 증가하는 숫자를 쉽게 이해하면서 구구단이 뭔지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매일 하나씩, 8일 만에 다 외웠습니다. 숫자가 일정하게 커지는 것을 구구단을 통해 알게 되었고, 일정하게 커지는 숫자가 머릿속에 그림 그리듯 그냥 생각났습니다. 구구단을 외우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게 제게는 맞습니다. 미안합니다. 정말 재수 없죠?

 

 

3. 초등 2학년

한 동안 산수 시간에 구구단만 계속 배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산수 시간에 구구단 시험을 치는데, 거꾸로 외우는 시험이었습니다. 한 명씩 앞으로 선생님 앞에 불려 나가서 선생님이 7단 이러면, 7x9=63, 7x8=56 7x7=49 이런 식으로 거꾸로 외우는 거죠.

 

수업시간에 거의 딴짓하거나 멍 때리던 저는 시험 치는지도 몰랐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더럭 겁이 나서 머릿속으로 급하게 거꾸로 외우는데, 제 번호가 6번이라 금방 불려 나갔습니다. 그때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데, 선생님은 제게 9단부터 2단까지 몽땅 다 시켰습니다. 틀리지 않으니까 계속 시킨 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외운 게 아니고, 그냥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입으로 말하면서 다음 걸 생각하고  줄줄줄 말했고, 물론 완벽하게 끝냈습니다.     

4. 중3 아이큐 검사

중3 아이큐 검사 중, 수리력 테스트 시간이었습니다.

한 5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간단해 보이는 문제를 저는 휘리릭 쉽게 다 풀어버리고 답안지에 표기를 끝내고 샤프를 내려놓고서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고개를 쳐든 저를 빤히 계속 쳐다보셨습니다. 뭐지 저 놈은?이라고 말씀하시는 거 같았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머리를 푹 숙이고 숨소리도 내지 않고 문제를 열심히 풀고 있었습니다. 제 시야 앞에 앉은 아이들의 푹 수그린 머리통을 물끄러미 보다보니 우월감이 슬쩍 올라왔습니다.

한 1분 정도 지났으려나, 제한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습니다. 반 친구들은 문제의 반도 못 푼 학생들이 태반이었습니다. 무슨 어려운 수학 문제가 아니고, 보통 학생들이 시간만 주어지면 풀 수 있는 간단한 문제들이었는데, IQ 검사라서 그런지 제한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문제를 빨리 푸느냐에 초점을 둔 테스트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5. 고1 적성검사

IQ 검사 비슷한 걸 했습니다. 적성검사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시간이 좀 더 주어졌던 거 같고, 문제도 난이도가 좀 올라갔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수학 내용도 좀 있고, 멘사 수학책에 나올 법한 IQ 테스트 냄새가 제대로 풍기는 문제들도 꽤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유형의 문제는 이때 처음 접해봤습니다. 멘사가 뭔지 들어보지 못하던 인터넷도 없던 80년대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었는데, 두 문제를 못 풀었습니다. 시간이 충분히 남아서 두 문제를 풀려고 끙끙댔는데 못 풀었습니다. 나중에 그 적성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전국의 고등학교 1학년 모두의 결과와 함께 나왔습니다.

 

저는 적성검사 다른 항목들은 그저 그렇게 나왔는데, 수리력만 99.7% 정도의 그래프가 나왔습니다.

제 앞에 앉는 전교 1등 친구, 나중에 우리학교에서 유일하게 서울대 들어간 그 녀석은 대부분 항목이 97~99%였던 걸로 저는 기억이 납니다. 그 친구는 눈으로만 공부하고, 절대 손으로 뭘 쓰지도 않던 녀석이었는데 결국은 서울대를 갔습니다. 머리도 뛰어나고 집중력도 좋은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의 수리력이 97%였고 제가 유일하게 앞선 항목이었습니다. 

반 친구들과 다른 반 전교 탑 근처에서 놀던 몇몇 애들이 와서 제 수리력 그래프를 구경하고 갔습니다. 

 

재수 없게 들리시겠지만, 저는 솔직히 조금 열 받았었습니다. 99.7%라고 숫자로 찍히지는 않았지만, 그래프를 눈대중으로 봤을 때 99와 100 사이의 70% 수준이었기 때문에 제 스스로 99.7%라고 단정지은 건데, 그 말인즉슨 1000명 중에 제가 3등 정도이고, 제 앞에 2명이나 더 있다는 사실이었으니까 저는 만족하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6. 체육시간 암산

그때가 고1 체육시간이었습니다. 체육선생님이 수학 잘하는 애 5명을 빼고 모두 자율 축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애들이 당연히 저를 지명하는 바람에 5명의 공부 잘하는 아이들 틈에 끼어 A4용지를 들여다봐야 되었습니다. 전교 1등 친구도 물론 제 옆에 같이 있었습니다.

 

체육선생님이 우리들 각각에게 주신 것은, 2학년 선배들 한 반 학생들의 이름, 중간고사 점수, 기말고사 점수, 합산 점수, 평균점수, 이렇게 각 이름 옆에 4개의 숫자가 적혀 있는 종이였습니다. 55명 정도 되는 한 반의 성적표를 각자 하나씩 손에 쥔 친구들에게 합산점수와 평균점수가 맞는지 체크를 하라셨습니다.

 

저는 빨리 끝내고 축구하고 싶은 마음에 최대의 눈과 두뇌 스피드로 후루룩 눈으로 읽어나갔습니다. 이내 "다 끝났습니다"라고 말하고 선생님께 A4용지를 드리려는데, 애들이 전부 벙쪄서 저를 쳐다봤습니다.

 

선생님은 진짜 제가 다 봤는지 다그치듯이 물어보셨습니다. "너 이 XX 다 본 거 맞아? 축구 빨리하려고 그러는 거면 너 XX다!". 그 당시는 체벌도 허락되는 살벌한 학교생활이었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대답드리고, 축구공을 쫓아 눈길을 돌리다가 전교 1등 친구가 읽고 있는 A4용지를 살짝 흘겨보았습니다. 그 친구의 시선은 아직도 A4 용지 중간 정도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승리감이 밀려왔습니다. 

 


칭찬을 모르는 부모님

부모님들은 칭찬에 무척 인색한 분들이었습니다.

제 평생에 부모님이 저를 칭찬하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제 평생 최고의 성적인, 무려 전교 4등이라는, 저 자신도 상당히 놀란 성적표를 보여드렸을 때, 아버지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 너 학교 애들은 공부 안 하는구나!" 그때 저는 살며시 웃었습니다.  

 


아버지의 이부자리 숫자 교육

저는 따로 암산이나 주산 같은 걸 배운 적이 없는데, 그냥 숫자가 잘 읽힙니다. 제가 이렇게 수리력이 좋은 이유가 단순히 부모님에게서 받은 유전자 때문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 저의 아버지가 제게 행하신 유일한 교육이었던 숫자 공부 방법을 여기 소개해드립니다.

 

초등학교 때까지 저희 가족은 셋방에 살았었는데, 제가 어린 시절, 아직 글자도 모르고 아무것도 배운 적 없는 나이에, 제가 잠을 자려고 이불 덮고 누워 있을 때, 가끔 아버지가 저를 팔베개해주시면서, 한동안 숫자 관련 질문을 하셨습니다.

질문은 무척 간단합니다.

 

2 더하기 2는?  4 더하기 4는? 8 더하기 8은? 16 더하기 16은? 제가 정답을 맞혀 나가면, 계속해서 32+32, 64+64, 128+128, 256+256, 512+512, 1024+1024, 2048+2048 4096+4096 8192+8192 16384+16384 이런 식으로 계속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마 제가 대견해서 계속 물으신 거 같고, 저는 그냥 하라니까 귀찮지만 졸린 거 참고 주르륵 읊어 드렸습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도 한 번 해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부드럽게 하시길 바랍니다. 수리력이 평범해도 수학을 잘하는 데는 크게 지장 없습니다. 

 

제가 전에 '덧셈 뺄셈의 혁명' 이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참고하실 분들은 아래 클릭해서 보세요.

 

 

덧셈 뺄셈의 혁명

 


 

숫자에 밝은 인간의 장점

일반인들이 숫자를 더하고 뺄 때, 요즘은 계산기가 있으니, 저의 수리 능력이 요즘 같은 시대에는 쓸모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많은 않다고 제 사례를 들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숫자 데이터 인지속도

한국 회사에서 초년병 시절부터 차장 때까지 제 직종이 회계 같은 것이 아닌, 해외영업이었지만 영업이다 보니 데이터가 적힌 자료를 자주 볼 기회도 있고, 만들어야 되는 때도 많았죠. 이런 보고서들을 볼 때, 데이터 관련 틀린 부분을 저는 서류 들여다보면 바로 찾아내곤 합니다. 그런데, 작성한 직원이나 다른 직원들은 제가 데이터 오류가 의심된다고 설명해줘도 대개 바로는 못 알아듣고 자신의 방식으로 이리저리 체크해보거나 엑셀 수식을 살펴봅니다. 엑셀의 수식이나 함수를 잘못 입력해서 발생한 경우도 있고, 입력한 원본 숫자 데이터 자체가 단순 손가락 타이핑 잘못으로 엉터리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주식 공부

주식에 대해서 배울 때도 숫자에 밝은 저의 능력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신문의 경제 기사를 볼 때도 물론 도움이 됩니다. 숫자가 얽힌 설명들이나 용어를 남들보다 빨리 이해하고, 이런 용어들이 왜 필요한지를 금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단, 주식으로 돈을 버는지 여부 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주식은 숫자가 아니라 심리게임입니다.

자신의 이성을 감성이 지배하게 두면 돈을 잃게 되는 그런 심리게임입니다.  

 

돈 계산

요즘이야 편의점에서 물건 사면 기계가 계산해주니까 틀리는 경우가 없지만, 간혹 세일 물건의 세일가가 입력이 안 된 경우가 생깁니다. 적어도 여기 독일에서는 허다하게 그런 일이 발생합니다. 분명히 포장지 겉에는 30% 딱지가 붙어 있거나, 광고 전단지에 버젓이 30% 세일이라고 되어 있는데, 계산대 POS 시스템에는 제대로 반영이 안 된 경우가 독일 마트에서는 가끔 발생합니다. 저는 바로 알아차리고 다시 봐줄 것을 말해서 손해보지 않습니다.

 

과거에 한국 지방 소도시 조그만 상점이나 고속버스 터미널 같은 곳에서 물건이나 표를 구매하고 돈을 거슬려 받았는데, 돈이 제 손에 더 올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돈 계산이 틀렸다고 하고 되돌려드립니다. 저는 스스로 나는 착한 사람이야 라고 흐뭇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적게 오는 경우에도 당연히 말합니다. 

 

요즘은 안 하지만, 369게임을 하면 제가 매번 마지막까지 남습니다. 369 끝자리에 3의 배수까지 더해도 저는 틀리지 않고 누구보다 오래 할 수 있습니다. 

 

 


숫자에 밝은 인간의 단점

머리가 굵어진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에 친구들과 어울리다 가끔 뭔가 계산을 해야 되는 경우가 나오거나, 1/N로 공평하게 나누어야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면 제가 또 머릿속으로 금방 계산해서 알려줍니다. 친구들은 제게 "저 놈 저거 돈에 약삭빠른 놈이다"라고 장난 섞여 말하기 일쑤였는데, 기분이 별로 안 좋았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고스톱을 치면, 점수 계산과 돈 계산은 주로 제가 했습니다.

 

돈 딴 파트너가 점수 계산하는 걸 보고 있으면 울화통이 치밀고, 돈 잃어서 화나는데, 빨리 진행이 안되니까, 제가 후다닥 점수 계산해주고 잃은 친구들 앞의 돈까지 세어서 딴 친구 쪽으로 획 던져줍니다. 빨리 새 판 시작하자는 거죠. 친구들은 제가 성질 고약한 놈이라고 오해했을 겁니다. 노름판이 이판사판 아니겠습니까. 


수학 수재, 수학에 막히다

제가 고1 때 까지는 수학 공부를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가 사실 맞습니다. 그런데, 고1의 2학기 말 시험에서 2개 틀려 90점을 받았습니다. 그게 제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저희 반에는 100점 맞은 전교 1등 친구가 있었고, 95점으로 하나 틀린 친구가 있었습니다. 제 자존심에 심한 스크레치가 났습니다. 

 

겨울방학에 수학기본정석 이라는 책을 샀습니다.

남들은 다 가지고 있는 그 당시의 표본 같은 문제풀이 책인데, 저는 1학년 겨울방학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펼쳐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딱 한 번 정독하고, 손으로 풀었습니다. 겨울방학 이후 첫 시험에서 무난히 반에서 홀로 100점을 맞았습니다. 기분 끝내줬습니다. 

 

물론, 서울의 공부 잘하는 학교의 시험하고는 수준이 다르겠지만, 어쨌든 제가 살던 경상도 공업도시에서는 나름 평준화되기 전, 고입 시험을 거쳐 걸러져 선발된, 그 도시에서는 누구나 가고 싶은 가장 커트라인이 높은 인문계고등학교여서 아주 바보들이 있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고입 200점 만점에 150점 정도가 입학 커트라인이었던 학교였습니다. 그 시절 포항제철고 같은 곳은 187점, 인근 김천고도 180점 정도가 입학 커트라인인 걸 감안하면 경상북도에서도 명함을 못 내미는 학력 수준인 곳은 것은 맞습니다. 어느 도시인지 감이 잡히십니까?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금오산이 있는 구미입니다. 구미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초중고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개인사입니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중학교 때 인근 대구로 전학을 가면서 발생하는 구미지역의 학력저하의 한 단면이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보시는 후배님들 계시다면 미안합니다.   

 

위기 엄습, 고2 수학 II

저의 위기는 자연계를 택한 고2 때 찾아왔습니다. 고등학교 수학 II(자연계)는 더 이상 저의 수리능력이나 수학적 감각만으로 풀 수 없는 수준을 요구했습니다. 복잡한 공식을 외워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어야 했습니다. 저는 공식을 웬만해서는 안 외우고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는 편이었는데, 즉 부지런한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학교 시험 문제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경상북도 모의고사나 전국단위의 수학시험을 보게 되면, 대개 짧은 50분 정도의 시간에, 한 번도 풀어본 적이 없는 유형의 문제가 다수 포함된 20~25개 정도의 문제를 풀어야 되었었고, 제가 못 푸는 문제가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방도시에 학원이라고 별반 없었고, 저는 갈 생각도 돈도 없었고, 학교에는 저보다 수학 잘하는 아이가 없어서 물어볼 데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동영상 강의나 EBS 강의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워낙 권위적이고 바쁘시고 또 제가 그 시절에는 약간 내성적이어서 물어볼 생각도 못했고, 솔직히 선생님들 중에도 수준이 떨어지는 분들도 가끔 계셨었습니다. 갑갑했습니다.  

 

중학교 때 대구로 전학 간 반장 하던 친구를 방학 때 집 근처 독서실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 친구가 다니는 대구 고등학교에서는 고등학교 전 과정의 수학을 고2 1학기 때 모두 마치고, 고2 2학기 때부터는 수업시간에 복습만 하고 시험 범위도 대입 치듯이 매번 전 범위를 포함해서 본다고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의 학교에서는 고3 2학기 때가 되어서야 정확히 학습 진도에 맞춰서 확률, 통계를 수학 선생님이 가르치기 시작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입 수학 학력고사, 좌절을 맛보다 

제가 대입을 치던 91학년도 학력고사 시험은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그 전해까지 서울대 일반 학과의 합격점은 340점 만점에 300~310점 정도, 의예과는 320점 이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에 서울대 의대 합격 커트라인이 280점으로 내려앉았고, 제 학교 친구 중 유일하게 서울대 인문대에 들어간 친구는 평소 고3 모의고사 때 310점 정도를 받았었는데, 정작 학력고사에서는 280점으로 합격했었습니다. 

 

수학이 특히 어려웠는데, 자연계 수학 75점 만점에 저희 학교에서 40점 넘은 학생이 한 반에 1~2명 정도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서울대 독문과에 간 친구는 평소 인문계 수학 55점 만점에 55~53점을 받았었는데, 정작 학력고사에서는 40점을 받았었습니다. 

 

고3 겨울방학 이후, 설 명절에 큰집에 갔던 때가 떠오릅니다.

제 사촌 중에 저 포함 세명이 그 해 학력고사를 쳤습니다. 사촌 한 명은 공부를 잘 못해서 전문대 갔고, 다른 사촌이 공부를 아주 잘하는 녀석이었습니다. 7살에 학교 들어가서, 고등학교 입시에서 학교 수석을 먹었는데, 90년 대입에서 예상외로 연세대 떨어지고, 91년도 학력고사에서 연세대 공대 학과수석으로 들어갔습니다. 서울대도 넉넉한 점수였는데, 하향 지원한 결과였습니다. 여러 사촌들과 어울려 있을 때, 그 친구가 자신은 모의고사에서는 거의 매번 만점을 맞는데, 학력고사에서는 75점 만점에 60점을 겨우 맞았다고 무척 분해하던 기억이 납니다. 부럽기도 하고 샘도 나고 그랬었습니다.

 

그때 제가 도저히 이해 안 되는 어떤 특정 수학 문제를 맞혔는지 물어봤더니, 그 사촌이 말하길 그 문제는 재수학원에서 배운 거라고 했습니다.

 

깊은 상실감이 몰려왔습니다.  

 

 

 


끝맺음

 

독일에서 제가 교육받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문득합니다. 

제가 제 자신을 파악하고 진로를 잡는데 더 좋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이미 게임은 끝이 났고, 저는 지금 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제게 준 기회는 여기까지입니다. 

 

제가 중국, 아프리카 혹은 북한에 태어나지 않은 게 어딥니까?

 

전 세계 70억 인구 중에, 중국 14억, 인도 13억, 아프리카 13억, 중남미 6.5억, 동남아 7억을 합치면 53.5억입니다.

70억 세계 인구 중에서 대체로 양호하다고 생각되는 16.5억에 속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이 제 인생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인생사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제가 수학을 정말 선천적으로 잘하는 걸로 태어났는지, 후천적으로 개발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두 가지가 복합된 걸로 판단됩니다. 

 

여러분들이 만약 당신의 조그만 아이에게 숫자나 수학 관련해서 연습문제 풀이를 반복하고 있다면, 그게 꼭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너무 많이 시키지는 마시라고 권고드리고 싶습니다.

 

수학이 재미없는 과목이라고 머리에 박히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학창 시절에 느꼈던 수학에 대한 생각을 떠올려 보시고, 자녀가 고스란히 그 감정을 또 반복해서 느끼지 않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뭘까 생각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독일 어느 호숫가 휴양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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