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독일에서 자라면 몇 개의 언어를 하게 될까?
이민을 고민하시는 가정이라면, 대개 영미권인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을 우선 고려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영어권 이외의 국가를 생각하시는 분들은 보통 특정 국가에 오랫동안 호감을 가지고 계신 경우죠.
영어는 워낙 독보적인 국제어의 지위를 지난 수십 년간 누려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가능성이 큰 만큼 우리 아이가 영어를 잘하는 것은 중요한 삶의 무기가 될 것입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우리 어른들도 학교에서 꽤 오랫동안, 최소 6년은 영어를 공부했기 때문에 대화는 좀 어렵다 하더라도 읽고 간단한 단어나 문장을 이해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죠. 그래서, 가족 모두가 정착하기에 영어권 국가가 확실히 더 편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독일에 정착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단어도 하나 제대로 모르고 있으니, 어디를 가든 까막눈 신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물론, 오시기 전에 왕초급 독일어는 하고 오시겠지만, 실전에 오면 쓸모가 없죠.
미리 밝혀드리는데, 오늘 제 포스팅 내용은 조금 억지스럽게 들릴 수 있습니다. 두서도 없습니다.
언어 외에도 우리가 영미권의 문화에 많이 노출되어 왔기 때문에 더 친숙하게 느낀다는 점도 영미권 이민을 선택할 때, 또 다른 선호 요인입니다.
영미권 이민 가정의 부모는 영어를 부족하나마 간단하게라도 하실 수 있기 때문에 초기 정착 시에 좋은 직업은 아니라 하더라도 일단 직장을 잡고 약간의 경제적인 수입을 득하기가 수월한 편입니다.
독일에서 정착하게 되면 언어적인 장벽으로 인해 부모님 세대가 직장을 잡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한국 관련 사업을 하거나, 자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일어는 따로 알파벳 발음하는 것부터 배우셔야 됩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투자하거나, 혹은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독일어를 배워야 합니다.
부모 세대에게 독일 이민은 영미권 이민보다 확실히 적응이 어렵습니다.
자, 여기서 이제, 언어 배우기에 국한해서 비교해 보겠습니다.
먼저, 영미권으로 이민 온가족 자녀의 경우, 영어는 정말 원어민 수준으로 잘하겠죠. 한국어의 경우, 몇 살 때 한국을 떠났는지, 집에서 부모들과 한국어만 쓰며 대화하는지, 한국 문화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지 여부에 따라 그 능력이 결정됩니다. 그러나, 제3의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것도 학교에서 배워서 써먹을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따로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야겠죠. 그래서, 영미권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되면 영어와 한국어의 2개 정도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물론, 미국에 살게 되면 지역에 따라 스페인권 친구를 사귀게 되어 스페인어를 배울 수도 있고, 영국에 살게 되면 유럽과 가깝기 때문에 개인의 노력에 따라 제2외국어를 수준높게 구사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제 독일에 이민 온 가정의 아이는 몇 개 국어를 하게 될지 살펴볼까요?
결론적으로 독일 이민자 가정의 자녀는 대개는 3개 국어를 구사하게 됩니다.
우선 독일어는 원어민 수준으로 하게 됩니다.
한국어는 위에 영미권 이민자 자녀와 마찬가지로, 집에서 한국어만 쓰는지, K팝, 웹툰, 드라마 등을 통해 한국문화와 꾸준히 접하는지 여부에 따라 원어민 수준과 비슷한 한국어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영어의 경우, 원어민 수준으로 잘 하기는 쉽지 않으나, 비영어권 국가 중에서는 고등교육을 받은 독일인들의 영어 수준이 상당히 높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아이들이 할리우드 영화를 자막 없이 보는데 크게 불편함이 없고, 말하는 수준도 상당합니다. 이는 같은 라틴어계 어원의 단어, 문법을 꽤 공유하기 때문에 한국사람이 영어를 배우는 것보다 훨씬 적은 노력을 기울여도, 즉 특별히 외우려고 무진장 노력할 필요 없이 자연 습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독일학교에서는 제2, 제3외국어를 배우는데, 5~6학년에 프랑스어/라틴어/스페인어 중에 하나를 시작하고, 7~8학년 사이에 선택사항으로 추가 언어 하나 더 배우기 시작합니다.
만약 자녀가 프랑스어를 선택하게 되고, 더 많이 배우고 싶다고 하면, 9~10학년 사이에 6개월 혹은 1년 과정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프랑스에 다녀올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과거 13학년제 일 때, 학업량이 적어 많이 활성화되었었는데, 최근 12학년 제로 축소되면서 선호되지 않고 있습니다만, 현재 7학년 학생들부터 다시 13학년 제로 전환되기 때문에 학업부담이 적어 다시 활성화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럴 경우, 또 다른 언어 하나를 습득하게 되는 셈입니다. 즉, 4개 국어가 가능한 것이죠.
독일의 이웃 국가인 네덜란드나 벨기에를 여행하거나 업무차 가서 사람들을 만나보면, 웬만한 사람들은 3개 국어를 기본으로 하며, 4개 국어를 하는 사람들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가령, 네덜란드 사람들은 네덜란드어, 영어는 기본이고, 독일어도 많은 사람들이 배워 말할 줄 알고, 추가로 프랑스어나 스페인어를 구사합니다.
저의 첫 유럽 출장길이었던 2000년도에 벨기에에서 만났던 택시기사가 4개국어를 한다고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들이 특별히 머리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닙니다. 같은 라틴어 계열이라 배우기가 아주 까다롭지 않고, 학교에서의 실용적인 커리큘럼으로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영어와 제2외국어를 기본으로 하며, 다국어에 노출된 환경(=미디어, 지리적 여건) 등이 전 국민 언어 박사를 만드는 배경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정말 중요한 포인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외국에 사는 한국 가정일 경우, 무조건 집에서는 모든 가족이 한국말만 쓰셔야 합니다. 직장에서 그리고 학교에서는 그 나라 언어를 써야되지만, 집에서는 꼭 한국어를 써야 합니다. 이렇게 이중언어를 효과적으로 어릴 때 익히는 것이 자녀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당신의 자녀가 모국어(한국어)를 어설프게 배우게 되면, 나중에 성장하여 부모를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의 친척, 지인들과 인간적인 교류가 닫혀 버리는 그런 사적인 마이너스 뿐 아니라, 개인적인 지적 능력 향상이나 스펙면에서도 한국어는 이제 국제어로서 상당히 중요합니다.
이런 상황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미국인 일행이 유럽 여행을 다닙니다. 그들은 영어밖에 유창하게 할 줄 모릅니다. 그리고, 모국어가 영어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낙천적이라 계속 떠들고 웃고 하며 거리를 지나다닙니다.
그런 미국인 일행 옆을 우연히 비슷하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따라가는 사람들은 그들의 사적인 대화를 듣고 싶지 않지만 듣게 됩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게 되는 거죠. 즉, 영어를 쓰면, 남들도 알아들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말해야 됩니다.
반대로, 유럽에서 한국말로 지껄이고 다니는 한국인들의 경우, 주위에 외국인만 있다면 어떤 사적인 발언을 해도 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남이 알아들을 리가 없죠.
여기, 제 지인이 몇 년 전에 여행길에서 직접 겪은 에피소드를 소개하겠습니다.
독일에 사는 한국인 가족이 이태리 여행을 갔습니다. 어떤 유명한 곳을 방문하기 위해 기차를 탔죠. 그런데, 갑자기 바로 뒤에서 독일어로 자신들을 비하하는 수군거림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빠로 보이는 독일 남자가 "이 앞에 동양인들 냄새가 좀 나는 거 같다. 어쩌고저쩌고" 하더랍니다.
몇 마디 듣고 있던 제 지인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조용히 한국말로 "우리 저 앞으로 가자!"라고 말했고, 가족들은 아무 말없이 조용히 아빠를 따라 앞으로 이동했습니다.
물론, 점잖은 제 지인 가족은 알아듣는 척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리를 이동했습니다. 그 아빠는 자신의 한국 아이들이 상처 받지 않기만을 바랐다고 합니다. 그 독일인 가족은 이 동양인 가족이 독일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미쳐 생각지 못한 것인데, 무심코 실례의 말을 해버린 것입니다.
물론,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제 한국 지인 가족이 그 날 혹은 그 전날 김치나 마늘이 들어간 음식을 좀 과하게 먹었다면, 독일인들이 자신들에게는 고약하게 느끼는 마늘 냄새를 맡고 기분이 나빴을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못 느끼지만, 독일인들은 마늘 냄새에 상당히 민감해서, 독일에 사는 교민 중, 회사에서 독일인과 근무하시는 분들은 주중에는 김치나 마늘 들어간 음식을 삼가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렇지만 어찌되었든, 냄새가 좀 나더라도 소리가 당사자에게 들리도록 말한 부분은 분명히 실례인 경우겠지요.
외국에 사니 마늘 때문에, 한국음식도 맘대로 못 먹는다고 하실 분이 계시겠네요. 타지에 사는 설움은 크거나 작거나 당해본 사람만 느낄 수 있습니다. 설움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들의 무지함을 탓하고 내 마음에 상처가 남지 않도록 다스리는 게 중요합니다. 내가 왜 그들의 무지한 발언에 상처를 받아야 되냐?라는 생각으로 살아야 합니다.
혹여 여러분이 오다가다 해외 사는 교민 친지나 친구를 만나게 되면 잘 쓰다듬어주세요. 좋은 나라 사는 거 같지만, 다들 나름 고충을 안고 살아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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