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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독일 교육

자녀의 책 읽는 습관 들이기

by 댄초이 2021. 2. 25.

 

개인적인 책과의 추억

제가 초등학교 5학년 즈음, 1980년대 시골 동네에는 집집마다 문 두드리면서 책 영업하시는 분들이 자주 다니셨습니다.

 

어느 날, 집에 가보니 아버지가 20권짜리 아주 크고 두꺼운 한국문학전집을 사놓고 책꽂이를 손수 만드셔서 방 한 구석에 꽃아 두셨는데, 저보고 저 책을 몽땅 읽으라고 하시면서, 읽었는지 검사하겠다는 으름장도 빼놓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교과서 말고는 책을 가져본 적도 읽어본 적도 아마 없던 아이였다고 기억합니다. 

다음 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30분을 걸어 집에 도착해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가방을 획 던져놓고 밖에서 애들하고 정신없이 싸돌아 다니다 주위가 어둑어둑해지자 갑자기 더럭 겁이나 얼른 집으로 뛰어가서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책이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밖에 나가서 애들하고 노는 것만큼, 따뜻한 방바닥에 배 깔고 이불 덮고 누워서 그 두꺼운 책을 보는 재미에 빠져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었습니다. 

요즘에는 이렇게 무식하게 크고 두꺼운 책이 출판되지 않는데, 제 기억에 대략 800페이지 정도 될 거 같은 굉장히 두껍고 사이즈도 A4 정도 되고 글자도 작고 종이도 얇은 그런 책이었는데, 요즘 출판되는 책으로 치면 한 권으로 다섯 권의 책은 만들 수 있는 그런 큰 책이었습니다. 

 

이 책들에는 일제시대부터 대략 1960년대 어스름까지 한국문학의 유명짜하다는 모든 소설가들의 대표 단편 및 중편이 거의 총망라되어 실려있었습니다. 염상섭, 김동리, 이상 같은 소설가들의 대표 단편집들이 총 20권의 두꺼운 책 속에 다 들어가 있는데, 실린 글의 소설가들만 아마 50명은 족히 넘었을 겁니다.

 

커서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어린 시절에 읽었던 단편을 국어책에서 서너 번 만났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속으로 난 이거 초등학교 때 본 건데 하는 우월감을 느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전 권을 다 본 이후에도 심심하면 책을 꺼내 맨 처음 손에 잡히고 눈에 띄는 제목의 단편을 읽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재미있으니까, 보고 또 봤었습니다. 단편 소설이 주는 재미, 책을 읽는 재미를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모르는 단어나 이해가 어려운 문장이 나와도 모르는 체로 그냥 읽어 나갔지만, 점점 독해력이나 어휘력이 늘어가서 처음에 몰랐던 부분이 저절로 알아지게 되는 경험을 시시때때로 했었습니다.

 

원래부터 잘하던 산수 빼고는 그저 그런 학교 성적이던 제가 크면서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는 매해 제 성적이 단계적인 상승을 보였습니다. 제 생각에 이런 근간에는 어린 시절 읽었던 이 책이 큰 힘이 된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원래 머리가 뛰어난 아이가 아니란 걸 저는 잘 알기 때문입니다. 


 

위인전의 문제점

제가 책을 수시로 읽는 모습에 아버지는 당시 유행처럼 집집마다 비치해놓았던 한국 위인전집 100권짜리를 사주셨습니다. 형편이 빢빡한 집안에서는 정말 큰 맘먹고 사셨을 겁니다.

 

이순신 장군이니 세종대왕이니 하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아는 인물부터, 송시열이니 유유니 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위인들도 모두 망라된 책이었습니다. 그 책도 정말 몽땅 다 정독해서 읽었습니다. ,

 

그런데, 부작용이라고 한다면, 당시 이런 위인전 책들은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으로 위인의 어린 시절이 꽤 과장되고, 소설 적인 허구로 가득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런 위인들의 어린 시절이 자세히 전해지지 않을 텐데, 그 당시 위인전은 하나같이 모두가 태어나는 날부터 하늘과 땅에서 갑자기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고, 어린 시절부터 영특하고 모범적이고 카리스마 있고 3살부터 글을 깨우치고 그 어렵다는 사서삼경을 7살에 모두 독파해버렸다고 하는 식의 슈퍼맨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제게는 위인을 존경하게 되는 감탄을 일으킴과 동시에 깊은 좌절감도 줬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 이 위인들은 그냥 태어날 때부터 위인이야. 나는 뭐 그냥 평범하지. 절대 이런 위인이 될 수 없어!".

 

요즘 위인전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자녀의 책읽는 습관 들이기

여러분이 결혼하여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자녀의 책 읽는 습관은 정말 중요한 발등의 불입니다.

핸드폰이나 게임에 쉽게 노출되는 아이들, 엄청난 학업량과 스트레스에 책 읽을 시간도 없고 흥미도 없는 아이들에게 우리 부모가 어떤 환경을 만들어줘야 될까요? 제가 아는 한, 이렇게 제안드리고 싶습니다. 

 

1.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셔야 합니다. 부모가 책을 자주 보고 재미있게 보는 모습을 보면 아이가 책은 재미있는 거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거실에서 핸드폰 검색을 하고 있다가도, 아이가 거실로 나오는 낌새가 있으면 얼른 핸드폰을 놓고 책이나 잡지를 집으세요. 이렇게라도 하세요. 아이는 궁금해할 겁니다. 아빠는 왜 맨날 책을 보지? 책이 그렇게 재미있나? 나도 한 번 봐야겠다. 아이는 따라쟁이들입니다. 솔직히 저도 아이가 어릴 때 이런 적 참 많습니다. 다행히 들킨 적은 없었습니다.  

 

2. 스마트폰 같은 전자기기에 최대한 늦게 노출되게 해야 합니다. 실리콘밸리의 IT업계 종사자들은 자식들에게 스마트 기기를 전혀 접촉하지 못하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이를 둔재로 만드는 지름길임을 그들은 잘 압니다. 

 

3.  엄마나 아빠가 육아가 힘들어 어린아이에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의 만화를 틀어주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정말 피해야 합니다. 그럼 어떡하냐고요? 아이는 심심해봐야 합니다. 그러면, 스스로 할 것을 찾습니다. 그냥 방에서 심심하더라도 혼자 놀게 내버려 두시는 편이 더 현명한 선택인 거 같습니다. 아이가 퉁퉁 대고 칭얼대더라도,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엄마가 지금 바쁘다는 걸 설명하시고, 아이에게 스스로 놀 것을 찾으라고 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찾습니다. 그리고, 재미있게 놀려고 무언가를 할 겁니다.  

 

4. 청소년이나 성인이 되어 읽을 법한 책의 어린이용 버전을 아이에게 권하지 마세요. 제가 이렇게 했었는데, 아이가 커서 같은 제목의 원작을 읽을 만한 나이가 되어 책을 사줬더니, 아는 스토리라면서 읽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5. 학습만화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저희 아이도 발명왕, 실험왕의 왕팬이었습니다. 지금은 웹툰에 빠졌습니다. 독일 교민 입장에서 아이가 이런 식으로라도 한국문화나 한글을 읽는 게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해서 크게 터치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국에 계신 여러분들은 웬만하면 학습만화는 가급적 읽히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만화에 길들여진 아이는 복잡한 문학이나 긴 글을 힘들어할 수 있습니다. 즉,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을 따라가는 학습능력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떨어질 개연성이 큽니다.  

 

 

맺음말

21세기 우리 아이들에게 책의 의미는 우리 기존 세대와는 아무래도 많이 다르지 싶습니다. 유튜브 같이 짧은 영상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긴 호흡으로 읽어내야 하는 책을 가까이하기가 점점 더 어려운 세상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런 세상이 될 것입니다. 

 

아이가 어릴 때 부모님들이 아이에게 조곤조곤 왜 책을 읽어야하는지 눈높이 교육을 시켜주시고, 본인도 자녀를 위해 솔선수범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아이가 사춘기에 들어가기 전에 부모로서 역할을 잘 해주시면 아이 인생에 책이 늘 함께할 수 있을 겁니다.

 

목표는 단 하나입니다.

 

"책은 즐거운 것이다" 라는 인식을 여러분 자녀의 무의식 세계에 넣어주셔야 합니다.

 

의식세계, 즉 이성이 관장하는 세계가 아니라, 무의식, 즉 마음이 관장하는 곳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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