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유치원 생활
처음 쓰는 글로 저희 아이의 유치원 생활을 더듬어 보려고 해요. 독일 이민을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요.
2009년 초에 회사 발령을 받고 독일에서 근무를 시작하고, 월세 집을 알아보고, 가족들이 9월에 오고, 만4세 아들이 유치원에 정말 운 좋게도 바로 들어갔어요.
여기 독일은 사립 유치원 이라는 게 거의 없어요. 사립 유치원에 넣을 필요도 없고요.
일부 있기는 하지만, 소수이기 때문에 크게 사회문제가 되거나, 위화감을 조성한다거나 하지는 않는 듯 하고, 한국같이 영어유치원 이런 건 물론 없죠. 대신, 영국계 유치원은 있는 걸로 압니다. 국제학교 부속 유치원 정도는 있겠죠?
국제학교가 우리가 아는 International school외에도, 영국계 학교(=영국 교육 커리큘럼을 따라요. 졸업 후에 영국 대학 진학 목적이고, 독일 가정 아이들 중, 교육에 신경 좀 많이 쓰는 넉넉한 집 애들이 다니기도 해요)도 있죠.
한국에서 회사 파견오시는 분들 중에 대기업에서 오시는 분들 자녀들은 대부분 회사에서 국제학교 지원을 해줘요. 대부분 3년 정도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시거나, 다른 나라로 이동해야 되기 때문에, 그 나라 일반 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죠.
저 같이 대기업 아닌 회사에서 온 경우, 자녀의 국제학교 지원은 언감생심 요청하기 어려운 사항이라, 일반 유치원에 당연히 다니게 했죠. 저는 이게 결과적으로는 더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다른 글에서 제 나름의 이유를 설명하기로 하고요.
제가 여기 와서 우선적으로 마주친 문제는 집 구하기, 자녀 유치원 알아보기, 공공기관(시청, 동사무소, 외국인 관청, 언어교육기관) 다니기 등등이었는데, 회사에서 도와주시는 분이 계셔서 나중에 알고 보니, 상당히 쉽게 해결을 한 거였어요.
결론적으로, 제가 처음 느낀 건, “뭐야 이거? 독일 선진국이라더니 엄청 욕 나오네” 였어요.
이 이야기는 또 나중에 하기로 하고요, 우선 유치원 알아보기부터 이야기 드리면, 2009년 2월에 도착해서, 4~5월 즈음에 현채인(=현지채용직원)으로 경력 있으신, 독일사정을 잘 아시는 한국 분을 채용하면서 바로 알아차린 게, 독일 유치원은 미리 신청을 해놓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렵다는 게 한국과는 좀 성질이 다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은 제게서 아주 질리도록 독일인들이 얼마나 계획적으로 인생을 사는지 귀가 따갑게 듣게 되실 겁니다. 지나칠 정도로가 아니고, 진짜 지나치게 계획적인 그들의 일면을 말이죠.
우선, 유치원은 크게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곳(=가장 인기 있습니다), 개신교(프로테스탄트)에서 운영하는 곳, 시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나뉩니다. 천주교 쪽이 재정이 제일 탄탄해서 그런지, 교육내용도 좋고, 시설도 좋아서 제일 인기가 많고, 그 다음이 개신교계이고, 마지막 제일 인기 없는 곳이 시에서 운영하는 곳입니다.
여기도 각 시가 재정이 튼튼한 곳은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저희 동네는 인구 29,000명의 작고 조용한 도시인데, 주변 큰 도시에 직장을 둔 조용한 Bed town 같은 곳(=한국의 Bed town 같지는 않고, 부모 때부터 고향에 사는 사람들도 많아요)이라 저는 살기가 좋다고 생각해요. 다른 한국인들은 제게 왜 이 촌구석에 사느냐고 하지만요 ㅎㅎ. 촌구석에 사는 좋은 점과 어려움도 나중에 말씀 드리죠.
5~6월에 자녀 유치원 알아보려고 직원에게 문의를 했더니, 많이 늦었다, 9월에 독일로 가족이 오지만, 아마 바로 유치원에 못 들어가고, 내년에나 들어갈 수 있을 거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집 바로 옆 천주교(=제 와이프가 천주교 신자) 재단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연락하고 두 번이나 들러서 사정 이야기 하고, 대기자 올려놓고 왔지만, 결과는 뭐 물론 불가능이었고, 개신교 유치원도 마찬가지였고, 다행히 시에서 운영하는 곳은 자리가 있어서 바로 다닐 수 있었죠.
보통은 1~2년 전에 미리 대기자 명단에 등록하거나, 혹은 자녀가 이미 특정 유치원에 다니고 있고, 만약 둘째가 태어나면 바로 대기자로 등록해둔다고 해요.
이게 상상이 안 가시겠지만, 독일인들은 자기가 나고 자란 곳에서 직장 다니고 하는 경우도 많고, 한국같이 2년마다 이사 다니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렇게 미리 신청이 가능하죠. 그러니, 저 같은 외지인은 카톨릭계 유치원에 등록이 불가능하다고 봐야죠. 당신이 독일 이민을 오신다해도, 몇 년 전에 나올지, 어느 도시로 정착할지 알 수 없잖아요?
그럼, 유치원 생활은 어떨까요? 한마디로, 그냥 논다.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입니다.
저에게는 약간의 문화적인 충격임과 동시에 '정말 좋다' 라는 생각이 확 들었습니다. 아침 7~8시 사이에 애를 유치원에 바래다 줘요. 유치원 끝나는 시간은 보통 12시 전후, 2시 전후에 가는 아이, 4시 전후에 가는 아이 등 다양해요.
보통은 엄마가 일을 할 경우에 한해서 정규시간(12시?) 이후에까지 애를 맡길 수가 있는데, 저희 아이는 독일어를 빨리 습득해야 했기에, 사유서를 쓰고, 그게 받아들여져서 2시까지 유치원에 맡길 수 있었죠.
유치원에서 무슨 활동을 하냐고 물으신다면,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그냥 논다에요.
만2세에서 5세(=여기는 만6세 되는 해, 9월에 초등 1학년 입학)까지 있는데, 보통 80~100여명의 아이들이 있던 걸로 기억해요. 처음 유치원 가서 2시간은 실내에서 활동하는데, 주로 비치된 어린이 용품들, 한국맘들이 좋아하는 창의력을 키워준다고 소문난 것들이 좀 있고, 그림을 그리거나, 블록놀이, 플레이모빌 등등 그런 것들을 가지고 놀아요.
그리고, 간식을 잠깐 먹는데, 이 간식이 대부분 생야채, 생과일을 주는데, 가령 당근, 사과, 오이 이런 걸 주는데, 저희 애 빼고 대부분 독일 애들이 잘 먹어요. 그리고, 10시가 지나면 유치원내 운동장에 나가서 놀아요.
바닥이 그냥 일반 잔디가 깔린 땅인데, 모래 놀이, 그네 놀이, 완구용 자동차 등등 몇 가지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렇게 넓지는 않더라고요.
제 자식이 유치원에 다닌 2년 동안, 학습으로 배운 거는 하나도 없어요. 글자 한 자 가르쳐 주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한국 유치원 선생님들은 대학이나 전문대 정도 졸업해서 애들 가르치는 준비가 되신 분들이신데, 여기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한국으로 치면 상고/여상(=지금은 뭐라고 부르나요?) 졸업한 고졸인 분들이 유치원 선생님 합니다.
유치원 선생님은 뭘 가르치지 않고, 다만 애들이 같이 놀아달라고 하면 짝이 되어 놀아주고, 그림 그리는 거 도와주고, 또는 애들이 살짝 다투거나 하면 잘 정리해주는 정도인데, 한국 선생님들같이 적극적으로 주도적으로 애들 사이에 관여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죠. 세상 따분하다는 듯이. 그러면, 애들은 주도적으로 자신들만의 놀이방식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시간이 지겹도록 주어져야 애들이 창의적이 됩니다. 왜냐면, 애들은 지겨운 걸 못 참거든요.
그런데, 한국 유치원은 과거보다 좋아졌겠지만, 아직도 선생님이 주도하에 애들이 발표하는, 선생님이 방향을 이끌어가는, 애들이 주도적일 수 없는 방식으로 유치원 생활이 이루어지죠. 유치원에서부터 애들의 생각의 힘이 달라진다고 저는 봐요. 물론, 한국 애들이 정말 정말 더 똑똑하긴 한데, 나중에 성인이 되면 이게 다 쓸데없는 부모 대리만족이었다고 저는 스스로 생각해요. 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또 결과가 그렇게 나오잖아요?
비용은 독일 정규교육(대학포함)이 모두 무료이지만, 유치원만은 무료가 아니에요.
부모의 급여수준에 따라 유치원 비용이 달라요. 집의 월 수입이 적은 아이들은 무료로 다니기도 하고, 적은 금액을 내기도 하고, 부자 집 애들은 많이 내죠. 단, 누가 얼마나 내는지는 학부모도 선생님도 절대 몰라요.
선생님들이, 혹은 유치원에 소속된 사무직원들은 이런 행정 업무를 하지 않아요. 이런 업무들은 아마도 별도의 사무실에서 업무 관할 거에요. 거기다, 개인 프라이버시에는 지독하리만큼 철저한 그들이므로, 이런 사실을 알고자 하는 사람도 없고, 가십거리로 입에 놀리는 사람도 없죠.
집이 가난해서 애들이 상처받는 일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 아이의 경우, 처음 한 달은 벙어리로 살았죠. 옷 안 몸에 모래를 잔뜩 묻히고 오기도 하고, 옷에 글자가 적혀서 온 적도 있고요.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되었기에 한국적인 사고의 틀에서 혹시 애들이 못 살게 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두 번째 달부터 간단한 말을 하기 시작하더니, 같이 노는 친구도 생기고, 아주 잘 지내기 시작했어요.
카톨릭이나 개신교 계통 유치원에는 대부분 독일계 애들이 많고, 종교가 이슬람인 터키계 애들이 시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좀 있는 편이었는데, 저희 동네에는 터키계 인구가 별로 없어서 유치원에서도 특별히 외국인이 많다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저도 외국인인걸요. 대신, 다양한 국가에서 온 애들이 많았죠.
가령, 한 반에 20여명이라 치면, 13~14명 정도는 독일애들이지만, 나머지 터키, 폴란드, 러시아, 프랑스, 네덜란드, 중동/아프리카계 등 다양한 애들이 옵니다.
애들이 어릴 때부터 다양한 인종을 경험함으로써 다양성을 몸으로 받아들이고, 인종적인 편견 등에서 자연스럽게 벋어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애들끼리 놀 때 서로 크게 다투거나 때리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왕따 문제도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거 같네요.
애들이 가끔 제 자녀를 놀리기도 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애들이 그냥 아무 의도 없이 하는 행동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저희가 오히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았더군요. 나중에 따로 에피소드 형식으로 경험담을 이야기 해볼까 해요.
그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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