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뉴의 경질, 슈퍼리그 창립
오늘 4월 20일(화)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서 포털의 주요 기사들을 섭렵하다 토트넘 감독인 무리뉴의 경질 소식을 접하고 놀랐다. 전부터 이런저런 설왕설래의 기사들이 쏟아졌지만, 위약금 이슈로 쉽게 자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대세였는데 갑자기 팀을 떠나게 되었다는 헤드라인에 기사를 죽 읽어보게 되었다.
뒤이어 이상한 글들이 이어졌다.
유럽에 슈퍼리그가 창설한다는 소식이었는데 12개 주요 명문 빅 클럽들이 참가를 공식화했다는 소식과 그것을 반대하는 각국 축구협회, 유명인, FIFA, UEFA 등의 발언들이 하루 내내 쏟아졌다.
슈퍼리그의 본질
본질은 돈이다.
많은 팬을 거느리고 엄청난 돈을 투자하는 빅클럽들 입장에서 리그 경기나,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자신들이 생산해내는 수익의 많은 부분들이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중소규모 클럽들에게 흘러들어 가는 것에 불만이 쌓이고 쌓였고, 이를 간파한 미국 기업의 자본주의적 발상이 빅클럽 구단주들의 가슴에 불을 댕긴 것이다. 코로나로 빅클럽들의 수익성이 악화된 것도 큰 몫을 한 것이니, 이래저래 코로나가 세계를 바꾸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심한 선수들의 몸값을 감당해야 할 빅클럽들은 오래전부터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수익보다 훨씬 적은 돈을 수령한다는데 큰 불만을 가져왔다. 불만을 가질만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폐쇄적 미국 프로 스포츠 vs. 개방적 유럽 프로 스포츠
스포츠에 관심 있는 분들은 다 아실 거다.
미국 프로야구 구단은 매년 꼴찌를 하더라도 어쨌든 메이저리그에 계속 머물 수 있고, 마이너리그로 떨어지지 않는다. 다른 자본이나 구단이 메이저리그에 들어오려고 해도 자리가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들어올 수가 없다. 프로야구뿐 아니라, 농구, 아이스하키, 미식축구 모두 같은 포맷이다.
유럽에서 프로 스포츠라고 하면, 축구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핸드볼이나 탁구 같은 종목도 있으나, 축구가 전부인 유럽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유럽의 축구는 완전한 개방형 리그다. 대체로 빅리그에는 18개 팀이 1부 리그에 참여하고 있고, 2부, 3부에도 각각 18개 팀 혹은 더 많은 팀들이 있으며, 매년 성적에 따라 강등 혹은 윗 리그로 올라가기도 한다.
미국 자본주의 vs. 유럽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
제목을 이렇게 정하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슨 뜻인지 전달은 됐으리라 생각한다.
미국에서 개인의 성공과 실패를 바라보는 시선과 유럽의 그것은 정말 다르다.
미국에서 개인이 실패하면, 개인의 무능 탓이며, 성공하면 개인 자신의 노력의 결과이므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리며 이를 자랑하는데 스스럼이 없다.
유럽은 정 반대다. 개인의 성공을 꼭 개개인이 잘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보지 않으며, 개인의 실패를 그 개인의 전적인 잘못으로 보지 않는다. 가령 메시가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리는 것은 시대와 사회가 그에게 준 선물이므로 그는 막대한 세금을 낼 마땅한 의무가 있다고 보는 입장이 유럽식 자본주의적 사회주의 체제다.
여러분들은 의아해하실것이다.
미국도 어차피 유럽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건설한 나라인데, 왜 이렇게 다른가 하고 말이다.
이유는 미국의 자본주의는 원래 자본주의의 총본산인 영국산이며, 영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유럽 본토(내륙)의 자본주의와 극명하게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미국식 글로벌 독점 기업들
구글, MS, 애플,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미국 기업의 특징은 시장의 독점적인 지위를 얻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좋은 듯하지만, 언젠가 우리에게 부메랑이 되어서 되돌아온다. 한 번 독점적 지위를 얻은 업체는 가격결정의 우위에 선다. 물건 구매하는 소비자가 갑에서 을로 바뀐다.
젊은 분들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00년대 초 대형 할인마트가 등장할 때, 모든 국민들이 차를 몰고 대형마트로 향했고, 골목상권과 시장은 죽어갔다. 가격 경쟁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지난 후부터 대형마트는 더 이상 가격경쟁을 하지 않았다. 매년 장바구니 물가는 계속 올라갔다. 시장 독점 지위를 획득한 2~3개 대형마트가 식료품 물가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독점지위를 획득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온라인 판매의 증가로 그들도 위기가 찾아왔다. 외부에서 적이 나타난 것이다. 대변신을 하지 않는다면, 미래에는 이런 대형 할인매장은 모두 도산하지 않을까 싶다.
슈퍼리그, 미국 자본주의의 유럽 침공
TV를 시청하는 소비자인 우리에게 나쁠 게 없다. 오히려 더 좋을 수 있다.
1년에 겨우 몇 번 빅클럽끼리의 경기를 보곤 했는데, 이제는 매주 빅클럽들이 경기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1년에 3~4번 경기하다가 10번 이상 경기를 하게 될 것이다.
팬들은 바르셀로나가 리그 하위권 팀들을 양민 학살하는 경기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슈퍼리그의 빅클럽들과 매주 경기를 한다면, 우리는 메시와 호날두, 케인과 손흥민이 부딪히는 경기를 매주 보게 되는 것이다. 정말 환상적이다. 이것은 TV 시청률 상승과 광고 매출의 증가로 이어지며, 빅클럽들은 더욱 큰돈을 벌게 될 것이다.,
축구 시장 자체는 대변혁이 일어날 것이다. 슈퍼리그에 속하지 못한 클럽들은 줄어든 관중 수입, 저조한 TV 시청률에 좋은 팀을 꾸리기 점점 힘들어질 것이고, 빅클럽과 중소 클럽 간의 경기력 차이는 점점 벌어질 것이다.
이것은 대형 할인마트만 남고 골목시장이 죽는 것과 같으며, 아마존이 전 세계 온라인 시장을 휩쓸어 여타 소매업체들이 문 닫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맺음말
향후 슈퍼리그의 안착과 성공은 축구계에 엄청난 태풍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이번 이슈가 축구에 그치지 않고, 대륙 유럽인들의 사회 보편주의에 기반한 전통적인 가치관이 미국식 순수 자본주의에 잠식당할 것이라는 데에 있다.
유럽에서 축구는 한낱 스포츠가 아니다.
한국인들은 체험적으로 알기 어렵지만, 유럽 남자들은 만나면 축구 이야기로 밤을 새우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에 깊이 뿌리 박힌 축구에 미국식 가치관의 침투가 장기화되고 성공한다면, 축구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사회 시스템의 변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될 사실이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안 소수 1%에 속할 가능성보다는 다수의 99%에 속하다 생을 마감할 가능성이 99%보다 더 높다.
적은 연봉의 이름값 떨어지는 중소 클럽 선수들이 똘똘 뭉쳐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고액 연봉자들로 가득 찬 빅클럽을 이기고 우승하는 그런 일이 우리에게서 멀어질까 두렵다.
고인물은 항상 썩는다.
폐쇄적인 미국 프로스포츠 문화의 유럽 침투를 결사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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