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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생활/단편 소설

차별인가 무시인가 오해인가?

by 댄초이 2021. 3. 25.

독일 정착 초반에 겪은 일_에세이(소설 형식) 

 

 

 

독일 유치원 가는 길

집을 나서는 내 앞에 아직도 낯선 독일의 주택가 골목길과 집들이 서있다.

 

아이는 엄마 손을 꼭 잡고 짧은 다리로 제법 잘 걷는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남편 따라 독일에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현실이 꿈꾸는 것 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조금 멍한 기분이다. 

 

자주 만나던 친구들도, 이웃 도시에 살던 엄마도, 사랑스러운 조카들도 이제는 전화나 카톡 따위로만 연락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어쩌다 만나던 친구들이나 친척 어른들과도 왠지 더 애틋하게 문자나 통화를 하게 되었다.

 

새로운 땅에 발을 디뎠다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큰 것은 나의 예민한 성격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자책을 한다. 독일 소도시가 주는 차분한 편안함보다는 시끌시끌하고 번잡하며 항상 종종거리는 한국의 모습이 너무도 그립다. 아득하게 그립다.

 

몸이 떨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던데, 한참을 하늘 높이 날아 닿았던 이 땅, 지구 반 바퀴를 돌아야 도착하는 이 곳에서 지금 나는 아이 손을 잡고 새로 등록한 독일 유치원으로 가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친정엄마는 지금 저녁 먹은 걸 치우고, TV 앞에서 아빠와 드라마를 보고 있으실거다. 그분들과 나는 이제 영 다른 세상에 사는가 보다. 


무시당한 건가? 

이 주택가 길에는 걷는 사람 보기가 어렵다. 다들 집에서 뭘 하는지, 차만 타고 다니는 건가? 가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보이고, 강아지 산책하는 사람들만 어렵지 않게 보인다. 

 

아이를 데리고 집 현관문을 나서서 몇 십 보를 걸었다 싶은데 저만치 앞에 한 여자가 작은 짐을 손에 들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디서 본 거 같기도 한데, 내 눈에 독일인들을 구별하기가 쉽지않다. 서로 다르게 생긴 게 확실한 거 같으면서도 어떨 때는 누가 누군지 구별이 금방 안된다. 유치원에서 처음 만나는 엄마와 으레 껏 인사하고 그녀들의 이름을 들어도 낯선 그들의 이름은 내 왼쪽 귀로 들어왔다가 오른쪽 귀로 나가버린다. 

 

가까이 다가오는 그녀가 누군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몇 번 마주쳤다 인사를 나눈 같은 반 유치원생 엄마였다. 독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더라도 Hallo(할로)하고 인사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유치원 아이 엄마로 인사를 몇 번 나눈 사람을 길에서 마주치니 조금 반가운 마음도 들면서 인사를 해야 된다는 생각에 가벼운 긴장감이 들었다.

 

그녀가 나를 지나쳐 가기 전, 인사를 하기에 적당한 거리에 그녀가 들어왔을 때, 나는 인사를 나눌 요량으로 그녀의 눈을 쫓았다. 어색한 웃음을 짓고 할로할 타이밍을 찾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앞만 보고 걷더니, 이내 뒷쪽으로 사라졌다. 

 

 

 


번뇌 

집에 돌아와서도 오후 내내 그 여자 얼굴이 어른거렸다. 왜 나를 모른 척한 거지? 분명히 유치원에서 서너 번 인사도 했었는데? 나를 무시하는 건가? 날 모를 수가 없을 텐데! 이 동네에 동양인이라고는 중국식당에서 일하는 몇 명 빼고는 우리 가족밖에 없는데, 왜 쌩까는 거지? 

 

저녁 차리면서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낮에 겪은 이야기를 해봤지만, 그도 뾰족한 대답이 없다.

 

"뭐 이상한 사람인가 보네.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냥 무시해버려!"

 

그래 무시해버리자! 지가 뭔데 나를 무시해? 모르는 사람들도 길 지나갈 때는 구텐탁 구텐탁 잘만하는데 왜 나한테는 눈길도 안 주고 그냥 가버린 거지? 열 받아 정말!

 

아침에 일어난 남편은 늘상 하던대로 아침식사를 거르고 차를 몰고 일찍 출근했다. 아이는 진작에 일어나 꼼지락거리며 엄마 옆에서 놀고 있다. 아이를 씻기고 입혀서 현관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섰다. 

 

어제 일이 아직도 머리에 있다. 어제 그 여자 만나면 어떡하지? 그냥 나도 쌩깔까? 그래 쌩까자!

 


어제 그 여자

아이를 유치원 문 앞에 데려다주고 뒤돌아섰다.  

짧은 계단을 내려서고는 왼쪽으로 돌려 길을 나서는데 바로 앞에서 누군가 할로 하고 인사한다. 

 

어제 그 여자다! 순식간에 나도 '할로'하고 인사했다. 

 

유치원에서 집에 오는 짧은 시간 동안 기분이 영 그랬다. 마음이 비참하지도 열이 확 오르는 것도, 슬픈 것도 아니다. 그냥 이해할 수 없는 이런 기분을 내가 왜 느껴야 되는지 이해가 안 될 뿐이다. 

 


끝맺음

저희 가족이 처음 독일 이민 왔을 때, 제 아내가 독일 온 극 초반기에 겪은 경험담을 에세이(소설) 형식으로 써 봤습니다. 그 당시 이해하지 못한 그녀의 행동이 지금은 이해가 된다기보다는, 추측이 가능한 정도가 되었습니다. 

 

제일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그 여자가 동양인 얼굴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키 크고 마르고 계란형 얼굴을 한 철수 엄마와 키 작고 얼굴 동그랗고 귀여운 영희 엄마를 구분하기란 너무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서양인들은 이 두 사람을 여러 번 봐도 헷갈려한다는 것을 저희는 경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제 아내와 길에서 마주친 그녀는 제 아내가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 엄마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 아내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지나쳤던 거라고 저희는 추측합니다. 이럴 가능성이 90%는 되는 거 같고, 10%의 가능성으로 동양인을 약간 무시하는 교육 수준이 낮은 동구 출신 여자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런 한적한 소도시에 사는 정통 독일인들은 모르는 사람들과도 길다가 "할로"하고 인사를 하는데, 외국 출신, 특히 동구나 터키 출신 이민자 계통 사람들은 인사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조금 큰 도시 시내 나가면 서로 인사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사는 주택가에서 산책할 때 서로 인사합니다.   

 

수십 년간 살던 땅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삶을 시작하게 되면, 처음 1~2년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다른 한국 교민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그 나라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에 왔으니, 저희가 로마법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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